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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study-hard 2025. 3. 19. 10:05
  • 목차
    • 베데스다 연못 사건
    • 예수님이 행하신 말씀의 기적
    • 영적 교훈
    • 신학적 해석

 

 

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됩니다. 그 사이에 중간기 400년의 역사가 존재하죠. 이 가운데 신약의 꽃이자 신약 제일 처음 나오는 문서가 요한 복음. 오늘은 이 요한복음 5장 1절에서 15절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 사건 

 

예수님께서 어느날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에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일 때,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던 한 사람을 보시고,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

 

그러자 병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즉, 그는 연못에 들어가면 몸이 깨끗이 씻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이 일에 동참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은 죽이러 온것이 아니요 나는 살리러 온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자기 자신을 주려고 이 세상에 왔다라고 분명히 신약에서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이 베데스다 연못에 얽힌 "물이 움직일때"에 주목합니다. 이 물이 고요하고 잔잔할 때가 아니고 흐르고 움직일 때 그 연못에 들어가면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인 물은 썩은 물이요 흐르는 물은 순환되어 맑은 물을 샘솟듯이 위로 올려주는 물이겠지요.

 

저는 감기에 걸리면 그냥 병원에 안가고 집에서 대추차 생강차등 민간 요법을 의지하여 몸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 가면 오히려 병을 얻는 것처럼 몸이 여기저기 아프거나 매우 힘이드는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 일어나 병원직행 처방 받아 약 한봉지에 몸이 말끔히 씻은듯이 나음을 입어 신기하다라고 생각한 적 없으신가요? 저는 병원에 잘 안가는 체질이라 가끔 이렇게 몸을 지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고 이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상속 우리를 향한 최선의 배려이기 때문이겠지요.

 

여하튼 움직이는 물이 의미하는 바는 일상적이고 루틴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 내가 평소 싫어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그곳에도 하나님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자비와 권능적 사역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이 세상을 감찰하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물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거란 확신을 사람들은 외면하였습니다. 작은 자 약한 자 잃어버린 자 소외된 자를 향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는 그의 주권적 사역과 맞물려서 결국 베데스다까지 오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말씀의 기적

이제 예수님은 이렇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 5:8)

 

그 즉시, 그는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는 흐르는 물에 들어가야만 몸이 낳는다고 믿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의 선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 이어주는 기적은 그 말씀 그 선포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해줍니다. 이는 그 말씀의 선언 자체의 위력입니다. 그 효력은 행위를 수반하며 일어나는 행위를 즉각적으로 일으키면서 그가 움직이는 물에 들어간 것과 진배없는 효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내가 늘상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렇게 되리라고 끊임없이 믿어왔던 바대로 이제는 진행되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드시나요? 인간의 욕심이나 탐심 그리고 눈에 보기에 좋은데로 나아가던 발걸음으로부터 어느순간 역행하여 가고 있는 나의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드시나요? 예수님의 기적의 사역은 말씀의 사역입니다. 이 말씀은 낮이 낮에게 밤이 밤에게 전하여 주는 소리없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사랑하신 인류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기적은 안식일에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믿는 즉, 이미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친 예수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후 성전에서 그 병자를 다시 만나, 그에게 더 깊은 영적 교훈을 주십니다.

영적 교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5:14)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이는 병자의 습관적이고 반복된 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죄가 무엇일까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듣는 귀를 가지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귀로 이미 그의 죄가 무엇인지 간파합니다. 믿음 없음입니다. 믿음이 없이 침상에 누워만 있던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믿음을 회복합니다. 낫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 하나만 있으며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 복음의 능력으로 해낼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 해석

이 사건은 예수님이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를 넘어, 영적인 구원과 회복을 가져오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고통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한순간에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전존재가 육신으로만 된 것이 아니고 영적 존재라는 사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고백처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천하보다 한 영혼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오늘도 약한 자 작은 자를 향한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능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말씀의 선포로 일으키시는 기적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육체적 치유를 넘어, 믿음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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