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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교회의 본질
- 교회의 목적
- 교회에 위탁된 과제
칼바르트의 교회론는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이 충돌되는 두 가지 교회론을 하나화 하는데 기여해 교회 분열을 놀랍게 막은 이론이다. 이는 그가 이 이슈를 하나의 과제의 양면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의 교회론은 한마디로 사건으로 보는 교회론으로 그가 제시한 교회론의 구조와 특징을 살펴보겠다.
교회의 본질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는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교회가 있다]라는 주장이 그의 교회론의 본질적 핵심 내용이다. 말씀의 사건이 교회라는 주장은 에밀브룬너도 그의 저서 [교회에 대한 오해]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이 교회의 의미는 건물이 아닌 만남 그리고 교회라고 정의한다. 호켄다익의 [흩어지는 교회]에서도 그렇다. 그의 교회론의 진보는 1953년된 출간된 [교회교의학]에서의 보이지 않는 교회론이다. 즉 교회는 성령과 그리스도인 곧 공동체의 모임이라는 새로운 정의관이다. 교회의 불가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기에 더하여 교회는 장소적 시간적으로 현존함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임을 만남의 사건으로 규정한다. 성령이 문을 열때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껍질이라는 시각이다. 하나님의 만남속에 일어나는 사건이 계시이며 은혜의 문이 열린다. 이 정의는 다시 변화된다.
후기 바르트 신학의 핵심은 인간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계시 자체이다. 인간이신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는 성자의 껍질이 아니고 성자 자신이다. 나아가서 교회는 구원을 위한 껍질이 아니고 구원의 길이고 구원의 도구이다. 후기 바르트 신학에서는 구원의 사역이 인간적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구원 사역의 동력이라는 점이다. 이에 해 영지주의는 여전히 교회안이나 교회밖에서 참 교회를 찾고자 한다. 카톨릭과 다른 점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베드로와 로마 교황으로 연결되는 사도권의 계승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해, 바르트는 성령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로 보았다. 성령의 활동을 제도적 카톨릭의 활동속에 유폐시키는 것은 잘못된 교회론이라는 지적이다. 즉, 카톨릭의 성육이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카톨릭에서 상명하복인 교회론을 지지하나 바르트는 형제자매간의 섬김의 교회론을 주장한다.
교회의 목적
첫째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다. 교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다. 교회의 지상과제는 전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는 박형룡의 교회론과 같다. 그는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을 변화시켜 유토피아, 즉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자유주의적 이교사상이라고 했다. 이는 성경과 충돌되는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이다. 교회의 지상과제는 전도의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교회의 목적은 세상을 변화시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ㅡ>세상>하나님의 나라라는 도식의 교회론은 신학자 몰트만의 이론이기도 하다. 1975년 [성령의 능력아래 있는 교회] 그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부제는 [메시아적 교회론]으로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적 교회여야 한다고 했다. 다시말해 영혼의 천국행이라는 헬라적 표상이 교회의 구원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몰트만은 유럽대륙의 동서냉전을 종식하는 평화신학을 제창한 인물이기도 하다. 바르트의 교회론은 위 교회의 목적중 교회의 구원 방주만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계열 교회 또는 한국기독교 협의회의 하나님 나라만을 지향하는 교회론 이 두가지를 신기하게도 잘 조화해낸다. 게다가 섬김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몰트만의 정치신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보다는 바르트에 의하면 참되고 구체적인 혁명은 복음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본다.
교회에 위탁된 과제
- 첫째 복음선포이다. 곤경의 뿌리는 옷을 갈아 입거나 제도를 바꾸는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과 세상의 곤경의 뿌리를 결정적으로 궁극적으로 해결하신다는 것의 선포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그가 세상의 희망이고 구원이라는 것을 교회가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복음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복음이 인간을 해방시키고 세상을 해방시킨다. 교회 선포의 과제는 저주를 풀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바르트는 복음 선포가 하나님의 진정한 혁명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 둘째,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위탁된 과제가 하나님 나라의 유비라고 언급한다. 교회는 말로 복음을 선포하고 행위로 이를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왜 복음화와 선교를 구분해 놓았을까? 선교는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복음화는 이미 세례를 받은 자들이지만 복음과 무관한 이들 즉, 잠자는 교회를 깨워야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을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만드는 일이 복음화 작업이다.
- 세번째 교회에 위탁된 과제는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대전제하에 교회가 해야할 일들을 정의하였다. 특이할만한 점은 바르트는 교회의 할 일에서 선교와 복음화를 구분해 놓았다. 선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 미전도인이나 국가에게 전략적 선교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복음화는 잠자는 선데이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작업임을 명시하였다.
여기까지 우리는 칼바르트가 의미하는 교회의 본질, 교회의 목적 그리고 교회에 위탁된 과제를 살펴보았다.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으키는 사건 즉 깨달음이라는 사실과 교회의 목적은 구원의 방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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