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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차
    1. 만나의 의미
    2. 나의 고기는 무엇인가요?
    3. 하나님과의 만남 복음

만나

 

1. 만나의 의미

[계시록 2장17절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이기는 그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리라]

멈추지 않는 순례의 행진, 복음은 신발이라는 고백처럼 성령의 여정에 초대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의 빛을 따라 거침없이 걸어 나아갑니다. 만나의 의미는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을 매일 먹이시고 기르시던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버가모 교인들에게 만나의 의미는 우상에게 주어진 고기를 피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이 만나를 얻기 위해서 피해야 할 고기는 무엇일까요? 돈, 학벌, 사랑, 우정? 어쩌면 이 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균형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사람의 소리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을 따를 것인지 각자가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의 소리와 성령의 소리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이는 마음의 생각을 행동할때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을 행동하다니요? 생각의 행동은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고 여길때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합니다. 가다가 우연히 벤치를 발견하여 잠시 앉아 쉽니다. 얼마 후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앞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따스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합니다. 캐셔의 친절한 인사를 뒤로하고 문을 열고 나와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집에 돌아오니 여전히 집 안은 내가 나가기전 그대로의 흔적을 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는 아늑함을 줍니다. 이제 조용히 소파에 앉아서 나의 생각의 행동이 이끈 오늘의 산책을 기억합니다. 오며 가며 스친 이들의 표정, 커피숍에서 캐셔의 말투, 산책길 벤치에 앉아서 바라 본 풍경들을 머리속에 떠올립니다. 그 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제까지는 내가 그토록 바쁘게 일하다 오늘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 마음의 여유 커피 한 잔의 따스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2. 나의 고기는 무엇인가요?

 

나의 고기는 부정적인 생각이 주는 나만의 욕심, 이기적인 생각, 불의, 참소, 배제, 소외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인것 같습니다. 그냥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무의미하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나는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 여유 그리고 마음의 생각을 가볍게 해주는 산책길에서 만난 이들의 평화로운 표정, 커피 한 잔이 주는 따쓰함에 고요한 평화를 느낍니다.  이것이 부정적인 고기라면 긍정적인 고기는 천사의 얼굴을 가장한 사단의 허울 좋은 눈속임 그리고 번지르르한 칭찬에 감추인 사람을 경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잠시 쉬어 갈 틈을 주지 않는 번거로운 일상에 매몰되어 거침없이 돌아가는 세상 시간에 내 몸을 맡기고 쉼 없이 달리는 기차입니다. 둘 다 우리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도록 하는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둘사이에는 아무런 함수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동일한 저울에 올려 놓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와 사연이 있으니까요. 하나를 정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인간은 사랑할 존재이지 정죄할 대상은 아니니까요. 이 둘이 서로 상치되고 상극을 이루어도 이를 모두 수용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적 입장이라면 도나티우스의 아프리카만 교회라는 이단적 사상까지도 아우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교회에만 국한하다면 우주적 교회 즉, 지역교회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추구해야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는 신자들을 품으며 양육하고 기르며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장소입니다. 여기에 단서는 누구나 입니다. 즉, 누구든지 그를 믿고 교회에 들어오는 자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삼아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축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의 만남 복음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복음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이요 우리로 하나님을 알도록 이끌어주는 선생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즉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 때문이요. 그의 살으심은 우리를 살리게 하는 구원의 좋은 소식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혼들을 배제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는 살아계신 말씀으로 세운 거룩한 장소입니다. 마땅히 받을 만한 것을 주께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끝없이 나를 지키고 내게 관계된 것만을 완전하게 하려고 합니다. 나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나의 소유 나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은 나를 오라 하시고 나를 먹이시고 나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상에게 주어진 고기는 먹음직하고 보암직 하겠지요. 여기에 우리 눈이 팔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받는 시기가 늦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선한 마음의 동기를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만나를 오늘도 주시려고 문 열고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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